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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_is....

늙은 휴대폰의 이야기

by 대청호블루스 2008. 10. 30.



나는 2004년 6월에 처음 주인과 만났습니다.
주인은 좀 괴팍하고 까다로운 여자 였는데
나와 쌍둥이 형을 보더니 첫눈에 반했던 모양입니다.
당시로서 나는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귀족폰(?)이었거든요.

MP3 음악감상은 기본이고
3D게임에 장시간의 동영상 촬영까지
화질도 제법 쓸만했으니
동영상 촬영하는 걸 무지 좋아하던 주인이 그냥 뻑! 가버린거지요.
바로 아는 사람을 통해 좀 많이(심하게)저렴하게
쌍둥이 형아를 구입하게 된거지요.

그런데 사자마자 문제가 생겼다나봐요.
주인은 아마도 동영상때문에 구입을 한 모양인데
화질은 엄청 좋았지만 소리가 문제였다고해요.

사람이 말하는걸 녹음하면
알아들을 수 있으면 다행이었고
그나마 괴물같은 목소리였다고합니다.

쬐그만 휴대폰으로 집음(소리모음)이 멋지게 되기를 기대한것이 잘못이었던거지요
아무튼...

까칠한 우리 주인
바로 컴플레인하고 A/S센터를 거치더니
급기야 기기를 교체받기에 이르지요.

그래서 저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라고 뭐 뽀족한 수가 있나요?
태어나길 그렇게 태어난것을..

사운드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자
휴대폰 대리점에서는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주인은 절 그냥 데리고 있더라구요.
아마도 그 아는사람에게 미안해서인 것 같았어요.

벌써 3년이 넘은 이야기 이네요.
그때를 생각하면 참 ...
조마조마 했어요.
매일 주인이 나를 버리지 않을까 눈치봐야 했거든요.

주인에게 온지 보름쯤이 지나자
비로소 나를 받아들이는것 같더라구요
본격적으로 전화번호며 주소를 입력하는걸 보면서
나도 두려움도 없앨 수 있었어요.

그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네요.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만 식구같은 생각이 드는거 있지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내게 매달려있는 usb목걸이를 매만질때나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할때
고민때문인지,
설레임때문인지 정도는 눈치로 알정도가 되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나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어요

위에 보여드린것처럼
긁히고 깨지고...
요즘의 내 상태가 장난이 아니거든요.
이유없이 기침이 나와 통화가 끊기기도 하고
밧데리가 예고없이 나가버리기도 하고
문자가 통째로 사라져버리기도 하는데
주인은 가끔 투덜거리기만 할뿐 여전히 날 예뻐해주거든요.
그런데 외모가 신경에 쓰였나봐요.

튜닝을 해주러 가자고
주인이 애지중지하는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얘기하더라구요.

그러자 딸이 강력하게 말하네요.
"공짜폰도 많은데
튜닝하는 돈이면 하나 새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제~발 바꾸라고."

그러자 우리 주인 왈~
"정이 많이 들어서 그래~"

난 완전 감동먹은거 있지요.

그래도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걱정입니다.
아직은 한 이삼년쯤 거뜬하게 버틸것 같긴한데...
그게 맘대로 되나요
주인이 예쁘게 튜닝을 해준다고 해도
갑자기 정신줄을 놓아버릴지도 모른다는 자신없음은
어쩔수 없는 것이니까요.

추한꼴 보이지 말고
이쯤이면 내가 주인을 떠나줘야 하는것은 아닌지...
자꾸 고민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