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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eling

이별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 '워낭소리'

by 대청호블루스 2009. 2. 8.


어릴때 다쳐 다리가 불편한 팔순의 농부가 있습니다. 다리도 불편하지만 이젠 여기저기 안 아픈곳도 없고 기력도 많이 쇠했습니다. 그래도 살아있는 동안은 움직여야 한다며 소처럼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마흔살이 다된 소가 있습니다. 딱보기에도 노쇠해 보이지만 할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몸이 천근만근이라도 싫은 기색없이 기꺼이 움직입니다.


'내 평생 영감 잘못 만나서...아이고 내 팔자야...' 를 입버릇 처럼 외치는 할머니가 있습니다. 꽃다운 나이 열여섯에 시집와서 평생 일만 한다는 불만을 달고 삽니다. 할아버지를 비난하는듯 하지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할아버지와 소를 옆에서 도와주고 함께해주는 애틋한 마음은 말로 하지 않아도 알수 있습니다. 


평생 동지처럼 함께 했기에 둘은 눈빛만으로도 서로를 압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보다도 이녀석을 더 의지합니다. 오랜세월이 흘러 이제는 할아버지도 소도 많이 아픕니다. 1년밖에 살수없다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소만큼이나 할아버지도 고혈압에 두통에 시달립니다. 아~ 아파 아파 하는 소리는 소의 마음을 이야기하는것 같기도 합니다. 귀가 잘 안들려서 할머니의 잔소리엔 대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도 워낭소리 만큼은 귀신처럼 잘 알아듣습니다.


농사를 지러 들판에 가는 일도 읍내에 나가는 일도 몸이 불편한 할아버지의 운송은 언제나 소가 맡아서 합니다. 30여년을 한 일이라 할아버지가 주무셔도 알아서 갑니다. 차가오면 알아서 피하는것은 어느새 할아버지의 자랑이 됐습니다. 


이제 늙어 힘이 없지만 이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밭을 갑니다. 내년엔 이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답니다. 힘에 겨울만도 하지만 묵묵하게 밭을 갑니다. 앞서가는 소도 뒤에서 미는 할아버지도 혼신을 다할 뿐입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논에 손으로 모를 심습니다. 두분이 일을 하는 곁에는 소가 지키고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기계를 쓰지않고 저렇게 손으로 하십니다. 풀도 직접 뽑습니다. 농약을 뿌리면 될 것을 소가 먹을 수도 있으니까 안된다며 편리함을 거부합니다. 할머니는 이것이 늘 불만입니다.


일을 하다가도 '꼴'을 베다가 소에게 먹입니다. 볏짚등을 넣고 쇠죽을 쑤어 먹이는 일도 귀찮지만 계속합니다. 사료를 먹이면 될것을 이 또한 할머니의 불만이 폭발직전입니다. 그래도 소를 위해서 할아버지는 하루에도 몇번씩 꼴을 베고 쇠죽을 끓입니다.


이제는 힘에겨워 할아버지를 태우기가 어렵습니다. 말을 안해도 할아버지는 아십니다. 불편한 다리지만 지게에 짐을 나눠지고 천천히 집으로 돌아갑니다. (가슴 뭉클한 이 장면은 개인적으로 영화속 최고의 장면으로 꼽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겨울에 따뜻하게 지내시라고 땔감을 많이 해놓고 소는 저세상으로 갑니다.


40년을 달고 있던 코뚜래를 빼주면서, 워낭을 떼어주면서 할아버지는 말합니다. '좋은데 가거라'. 평생 고맙다 사랑한다 말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소도 할아버지도 압니다. 할아버지 손에서 울리는 워낭소리가 그 빈자리를 맴돕니다.



이금희씨가 나래이션을 해야할 것 같은 인간극장류로 생각하고 극장을 찾은 것은 참 섣부른 생각이었습니다. 정해진 대본이 있을리 만무한 이 영화는 전혀 그럴것 같지 않은 소재로 재미와 감동 두마리를 다 잡습니다. 유행가 가사처럼 '10점만점에 10점'인 영화지요.

계속 터지는 웃음과 훌쩍임을 들으며 영화에 몰입해있던 78분. 평생 자식들을 위해 일만하고 계신 칠순 엄마의 삶이, 돌아가시기 전에 많이 아프셨고 언젠가 돌아가실거라는 생각만 했지 제대로 이별하지 못했던 시아버님이 영화 내내 오버랩됐습니다. 인생을 누군가와의 관계속에서 동행한다는 의미만큼이나 이별을 생각케 하더군요. 늘 함께한 가족과 혹은 동료와 제대로 잘 이별하기, 결국은 잘 살기의 문제를 천천히 두고두고 되새김질 해야 할것 같아요.

따뜻한 감동이 가슴을 치고 올라오게 만드는 영화,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게 만드는 영화 워낭소리. 어제가 마지막 상영인줄 알고 밤 열시 영화를 무리해서 보았는데 내일부터 둔산의 프리머스 시네마에서 상영하네요. 아직 못보셨다면 가족과 함께 보시길 권합니다.

아 참 좋은 뉴스하나.
워낭소리는 7일 누적관객 23만 1400명을 기록해 역대 독립영화 흥행기록 1위의 기록을 세웠다고 합니다. 저나 딸이 일조한거겠죠? ^^ 여전히 상영관이 늘고 있는 추세이니 신기록 행진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네요. 오랜만에 좋은 영화의 선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