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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_is....

장진영을 보내며 떠올린 27살의 위암환자

by 대청호블루스 2009. 9. 1.

지금 하고 있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이 전 간호학과를 나와 대학병원 일반외과에서 간호사로 8개월간 일한 경험이 있습니다.

신입간호사로서 미숙하지만 진심을 다했던 그 시절, 저를 간호사라는 직업으로 부터 도망치게 만들었던 세명의 환자가 있습니다. 이전의 글에도 포스팅했듯이 유난히 눈물이 많은 저는 그 환자들 때문에 눈물 마를날이 없었지요.

그중의 한사람이 대학 복학생이었던 27살의 위암 환자였습니다. 제가 졸업한 학교의 학생이기도 했으니 저에겐 선배이기도 한 그 환자는 제가 신입간호사로 그 병동에 배치되었을 때 이미 위암 말기중의 말기의 상태였습니다. 물론 약간씩은 다르지만 보편적으로 젊은 사람이 암에 걸리면 나이 드신분보다 진행이 아주 빠르다고 합니다. 혈기왕성해서 세포분열이 빠르다는 겁니다.

병을 발견하고 입원한지도 얼마되지 않는 환자였지만 이미 병은 어찌할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거지요. 큰 키는 아니지만 40키로그램을 겨우 넘긴 체중에 정말 뼈만 앙상한 상태로 늘 잠들어 있었습니다. 환자 상태와 관련된 이야기도 보호자와 하는게 전부였던 것 같아요. 늙으신 노모 또한 눈물이 마르지 않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실뿐이었습니다.

어느날 모처럼 의식이 있는 상태의 그 환자가 몰핀주사를 요구했습니다. 챠트를 보니 하루에 4번 즉 6시간마다 투여를 하도록 처방이 내려져 있더군요. 문제는 이전 주사가 겨우 세시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처방도 처방이지만 건의를 한다해도 계속 주사를 놓으면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래서 이런 설명을 했습니다.

"6시간에 한번 주사하도록 되어 있어 드릴 수 없습니다. 더 맞으면 위험해 지실 수도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원칙적으로 그러나 상냥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그 젊은 환자 말했습니다.

"3시간을 더 참고 기다린다고 뭐가 달라지는데요... 몰핀주사때문에 이 상태로 죽어도 좋으니 제발 아프지 않게만 해주세요..."

큰 소리는 아니지만 그 환자의 상태로는 최선을 다해 절규하듯이 말이죠.

맞는 말 아닌가요?. 참아서 호전된다면 죽을 힘을 다해 참겠지만 그렇게 시간을 연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조차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제가 그 환자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수 밖에요.

손을 잡아주는 것도 그의 울음이나 절규를 들어주는 것도.. 그 어떤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절망감.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환자는 하늘로 갔고 죽음을 앞둔 환자를 그저 그렇게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던 상황이 무기력하고 슬퍼서 간호사가 된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릅니다.

그 27살 환자에겐 아무런 도움도 못됐지만 그후로 배운게 하나있습니다. 그냥 손만 잡아주고 위로해주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도 최선의 간호가 될수 있었다는거죠.

말기환자와 잘 이별하기

지금은 말기 환자를 둔 지인들에게 얘기하곤 하는데요.

쉽지않은 결정이지만 가망없는 일이라면 죽음을 받아들이고 잘 이별하도록 힘쓰는게 가장 중요한것 같습니다. 병이 깊어질수록 모두 지쳐 정말 해야할 일들은 하지 않고 귀중한 하루하루, 일분 일초를 허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물론 환자가 아파하는 만큼 보호자의 절망감도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가족과, 연인과, 친구와... 미처 나누지 못했던 마지막 말들을 나누고 잘 이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정말 어렵지만 주변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니까요.

마지막까지 살아있다는 청각

또 의식없이 누워있거나 잠만 자는 환자라해도 청각은 마지막까지 살아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의식이 없더라도 손을 잡고 혹은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용기를 주는 말, 사랑하는 말들을 나눈다면 좋겠지요.
얼마전 끝난 찬란한 유산에서도 무의식상태의 할머니에게 손자 이승기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고백하고 나중에 의식이 돌아왔을때 그 할머니가 기억하는 내용이 우연은 아니랍니다.

37살 아름다운 그녀 진짜 별이 되다

점심식사를 하고 들어와 장진영이 위독하다는 짧은 뉴스를 보고 짬짬이 시작해 글을 쓰는 동안 그녀는 끝내 이 세상과 이별을 했네요.

실제 그녀와 닮은꼴 위암환자를 연기했던 '국화꽃 향기', '싱글즈', '연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 '청연' 그리고 유작이된 '로비스트'... 꼽기 시작하니 그녀의 흔적이 너무 선명합니다.

가족과 사랑하는이 이외 마지막 문병도 받지 않았던 그녀의 마지막 바람처럼 여배우 장진영으로 젊고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영원히 기억될 겁니다. 그녀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