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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명소] 장태산휴양림에서 나무위를 걷게된 사연

by 대청호블루스 2010. 11. 5.

 아낌없이 주고간 임창봉선생을 기억해야 하는이유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말은 이분을 위해 생겨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겁니다. 바로 장태산 휴양림을 조성한 고 임창봉선생이 그분인데요.  1922년 논산에서 태어난 선생은 건설토목업을 해서 큰 재산을 모았다고 합니다. 1970년대 초반 남들은 서울로 강남으로 갈때 선생은 장태산을 택했습니다. 18만평의 땅에 조림사업을 시작한거지요. 

30년동안 23만평의 산에 20만그루의 나무를 심었습니다. 전재산 200억을 투입했습니다. 혹자는 300억이라고도 합니다.  대학다니던 큰 아들까지 중퇴시키며 함께 했고 휴양림사업이 본격화되면서부터는 교직에 있던 둘째 아들까지 합류했다고 합니다. 온가족의 땀으로 거대한 휴양림 조성이라는 대역사를 일군거지요.

쭉쭉뻗은 메타쉐콰이어가 장관인 장태산은 1991년 전국최초로 민간휴양림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한데요. 한해 30만명이 방문하던 곳으로 1997년에는 대전8경에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선생의 장태산 휴양림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IMF 금융위기때문이었습니다. 은행에서 빌어쓴 돈의 이자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서 결국은 금융권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이 휴양림에 종교단체등이 관심을 보이자 시민단체등이 나섰습니다. 우여곡절끝에 대전시가 낙찰을 받았구요. 그 낙찰가는 40억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모두 다 넘기고 빈털털이가 된 선생은 갈곳조차 없었습니다. 장태산 한편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당뇨와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선생은 경매로 휴양림을 넘긴지 6개월만에 돌아가셨습니다.   

휴양림을 넘기면서도 "시민에게 돌아가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셨지요. 대전시가 낙찰받기까지 선생은 휴양림을 종교시설등이 아니라 시민에게 돌려주기위해 아들들을 설득했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속은 얼마나 서운하고 쓸쓸했을까요.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신조삼아 평생을 나무와 함께 사셨던 선생은 전재산과 30년 세월의 헌신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주고 그렇게 가셨습니다.

장태산은 대전시가 낙찰받은후 재개장을 했고 사계절, 주말휴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휴양림이지만 이것이 한 위대한 개인의 희생으로부터 시작됐다는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숲속어드벤쳐에서 나무의 눈높이로 혹은 새의 눈으로

요즘 장태산에 가면 가을이 제대로입니다. 오늘 소개할 것은 나무도 가을 풍경도 아닌 새로운 조형물 스카이웨이, 스카이 타워에 관한 것입니다. 이 사진은 가을이 시작되기 전 촬영된 것입니다.

숲속어드벤쳐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아주 조금 올라가면 스카이웨이와 스카이타워가 있습니다.

숲체험 스카이웨이입니다. 말그대로 하늘길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바로 옆에 나무가지가 있습니다. 나뭇가지 속으로 들어와있는 느낌이랄까요? 

15m높이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높은지 상상이 안되죠? 옆을 내려다보면 아찔하답니다.

스카이타워입니다.  맨위의 전망대가 27m 높이라고 합니다. 사람들 걸음때문에 흔들리기도 해서 스릴도 있습니다.

전망대에서 내려본 풍경 몇가지. 새들이 본 모습이 이런 풍경일까요?

어릴때 나무타는 친구들을 보면서 겁많아서 실행은 못하면서도 나뭇가지에 올라가 보고 싶었었습니다. 그땐 못했는데 이런 인공적인 힘을 빌어 대리경험을 하게됐다고나 할까요. 가지에 걸터앉아 피리를 불순 없었지만 나뭇가지 위를 걸어다닌 셈이지요.

아주 쉽게 나무위 유람(?)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당장의 관광객만을 생각한다면 좋은 효과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이런 설치물들이 나무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테니까요. 세월이 지나 나무들이 더 자라면 어찌될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나무들을 위해서라면 자연 그대로 있는것이 좋을텐데 말이죠.

이 풍경을 보고 임창봉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