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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표지 문화재를 직접 보니

by 대청호블루스 2011. 10. 7.

이전 합천여행 후기  보기 : 아이폰4로 막찍은 합천 황매산 가을풍경 


호기있게 모산재 코스를 선택했지만 황매산 암벽코스를 내려오면서 제 다리는 힘을 잃고 후들거렸습니다. 의지와 상관없이 무언가에 이끌여온듯 내려오다 마주하게된 영암사지. 황매산 남쪽,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에 위치한 영암사지는 사적 131호로 지정된 곳입니다.

늦어도 9세기 중엽에 창건되어 고려 말까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영암사는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탁본으로 남아있는 적연국사자광탑비의 비문을 통해 고려시대 이곳에 있었던 절로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산 기슭에 석축을 쌓아 다듬은 절터는 3개권역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맨 아랫쪽에 회랑지, 그 다음에 석탑이 있는 중문지, 쌍사자석등이 있는 금당지로 조성되었고 금당지 서쪽에는 귀부가 있는 조사당터가 있습니다.

동행한 김천령씨의 설명대로 절 아랫쪽부터 올라와야 하는데 우리가 코스를 거꾸로 오는 바람에 뒤부터, 위로부터 구경하게 됐습니다.

 

우선 들어간 곳이 서금당터 즉 조사당터 였습니다. 이 조사당터 양옆으로는 주인을 알 수 없는 돌거북이 두개 있습니다.

 

서쪽 돌거북

동쪽 돌거북

어쩌다 이 돌거북들은 비석을 잃어 버렸을까요? 많은 문화재들이 그러했듯이 일제 시대에 부쉈거나 비석을 떼어간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추측을 해봅니다.

 

조사당터를 빠져나오니 비로소 확트인 폐사지가 보였습니다.  김천령씨는 발굴조사중이라 파랑 비닐처리한것을 많이 아쉬워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한 규모와 분위기에 놀랐습니다. 망한 폐사지가 이렇게 당당하고 씩씩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군요.

 

가장 먼저 쌍사자석등에게로 달려갔습니다. 문화재 문외한이지만 유홍준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 표지를 장식한 문화재를 실제 아주 가까이서 보니 감동적이었습니다.

꼼꼼 둘러보지 않아도 잘생긴 석등은 도도하고 멋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습니다. 석등도 석등이지만 석축이나 배후의 황매산등 주변 지형과 어찌 이리 잘 어울리는 위치에 석등을 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런것들 때문에 국보도 아니면서 당당히 표지모델로 뽑힐 수 있었겠지요?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비닐을 쓰고 있는 중문지의 석탑까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화려한 석등에 비해 석탑은 어쩐지 소박한 느낌이 듭니다.

 

유홍준교수도 이 사자의 엉덩이가 귀엽다고 했는데 김천령씨도 여러번 딸아이의 엉덩이를 비유하며 토실토실 귀엽단 표현을 쓰더군요. 일행 모두 결국 이 엉덩이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힘껏 받치느라 발을 살짝 든것 같은 모습이 이 석등을 만든 석공의 훌륭한 솜씨를 엿볼 수 있게 합니다.

 

중문지로 조심스럽게 내려와 아랫쪽에서 본 석등입니다.  앞으로 톡 튀어나온 석축은 비탈길에 조성한 법당터를 효율적으로 쓰기위한 기발한 배치라고 합니다. 전체를 앞으로 빼면 중문지가 좁아졌을텐데 凸자 형식으로 석등 자리만 빼서 공간을 멋지게 조성한거죠.

살짝 휜 돌계단 또한 명물인데요. 무지개 다리라고 합니다. 발꿈치를 들고 경건하게 금당으로 올라가도록 만든거라네요.

 

아랫쪽에서 바라본 절터는 이런 모습입니다. 화강암 바위로 병풍을 두른듯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석등이나 석탑, 귀부와 같은 석조물 외에도 석축이나 구석구석 남겨진 조각들을 보면 이 절이 얼마나 크고 화려한 절이었을지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황매산을 넘어오며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려서 아쉽게도 이곳에선 주마간산처럼 지나와야 했습니다. 석축의 빛깔로 보아 일부는 최근에 다시 복원 한것 같습니다.

 

아랫쪽 회랑터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화려해봤자 망한 절터'아니던가

투어 안내서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설명을 보면서도 폐사지가 풍기는 을씨년스런 분위기를 어쩔 수 없을거라 짐작 했었습니다. '화려해봤자 망한 절'이란 선입견이 강했다고 할까요? 마음속으론 '도대체 뭐가 씩씩하다는 거야' 라고 꼬투리라도 잡을 심산으로 이곳에 발길을 들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기나 했냐는 듯 막상 영암사지에 와보니 따뜻하고 밝고 당당한 느낌에 압도 되었습니다. 확 트인 것도 좋았고 황매산의 멋진 호위 또한 절터를 당당하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김천령씨는 발굴조사중이라 어수선 하다고 했는데 전 웬지 그리 신경 쓰이지 않더군요.

이런 당당함때문에 폐사지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보호를 받게 된건지 거꾸로 마을 사람들의 사랑으로 당당하고 씩씩하게 보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찌되었든 마을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해야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암사지의 당당함은 주민사랑 덕?

1933년 일본사람들이 쌍사자석등을 훔쳐가자 마을 사람들이 이웃마을까지 쫒아가 빼앗아 왔다고 합니다. 이 석등을 면사무소에 보관하다가 1959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고 하네요. 마을 사람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무너진 삼층석탑도 바로 세우고 마을의 헌 집 두채를 옮겨 관리소격으로 두면서 이 절터를 지켰다고 합니다. 문화재 당국이 해야할 일을 마을 사람들 스스로 한거죠.

얼마전까지 중문지에 이 허름한 집 두채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방문했을때는 문화재청과 협의를 거쳐 집을 헐고 발굴조사를 하느라 어수선해진거구요. 

둔내리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절터를 지키기까지 했을까 자세한 내막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망한 절터의 흔적이 이렇게라도 잘 남아 있었던 건 온전히 그 들의 공이란 생각이 듭니다.

사진정리를 하면서 가능한 어수선한 풍경을 없앨까도 생각했지만 이런 모습 또한 소중한 기록이란 생각이 들어 남겨두기로 합니다. 

발굴조사가 끝나면 가족과 함께 다시 한번 찾고 싶습니다. 시간에 쫒겨 거꾸로 대충 둘러 볼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은 그때 달래야 겠습니다.

그땐 회랑쪽에서 차근차근 밟아 올라가며 꼼꼼히 보고 즐기렵니다.


 

 이글은 갱상도 문화학교 추진단 주관 '합천 명소 스토리투어' 참가 후기입니다